글쓴이 보관물: accordian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

2014-05-09 02;27;01

오래 전,  <낭독의 발견> 이라는 프로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편에 역대 대통령들의 전속 악사로 이미자, 조용필, 나훈아 등 숱한 가수들의 반주자로 영화 『인어공주』『봄날은 간다』등의 O.S.T 연주자로 활동하며 50여 년간 대중 가요사와 함께한 아코디언 연주의 대가 심성락 선생이 출연한 것을 보았습니다.

또 우연히 반도네온이라는 악기에 빠져 훌쩍 일본과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 코마츠 료타에게 사사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가 들려주는 마음을 울리는 연주와 음악으로 걸어온 인생 얘기도 아코디언 소리처럼 애잔하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밖에 틴 휘슬, 피들, 드렐라이어 등 수 많은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 하림도..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연주는 그동안 그사람이 지나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처럼 펼쳐 졌구요…

(…)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이 /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 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 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 김명인 詩 『바다의 아코디언』중에서

김명인 시인의 『바다의 아코디언』에 이어 심성락의 『해변의 길손』연주는 아코디언 소리의 품격을 높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코디언 소리가 좋아 독학으로 아코디언을 연습하고 한 평생 아코디언을 연주 하며 살아온 심성락의 손끝에서 울리는 깊고도 섬세한 바람의 소리는 진한 감동을 전해 줬습니다. 정당한 음악적 평가 없이 평생을 보이지 않는 무대 뒤의 반주자로 살아왔지만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우리에게 힘찬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몸에 닿아 울리는 악기의 떨림이 좋아 여러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게 됐다는 하림. 심성락과 한 무대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기도 했었다던 그는 심성락의 애정 어린 농담에 해맑게 응수하며 옆에서 지켜본 심성락의 음악에 대한 진정성에 반했다고 합니다.

우연한 계기로 반도네온이라는 악기에 빠져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는 고상지.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감각으로 입지를 구축하며 얼마 후 열리는 심성락의 헌정 공연에도 참여하는 그녀는 하림의 드렐라이어 반주에 맞춰 하림과 반도네온 합주로 들어보는 『리베르 탱고 』는 젊은 사람답게 힘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아코디언은 어떤 악기와도 잘 어울리는 매력있는 악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느껴봅니다. 그동안 아코디언은 독자적으로 각광받기 보단 보조적인 악기로만 영역이 제한적이었던 것 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코디언 연주자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전무했습니다. 이제는 아코디언이라는 악기는 추억과 향수를 안겨주는 낡은 소리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소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아코디언은 바람을 담아야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입니다. 아코디언의 애절한 선율 때문에 누구나 옛 추억을 떠올리는 마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아코디언은 듣는 사람은 추억과 향수로, 연주하는 사람은 그사람의 인생이 선율을 타고 흐르는 것입니다.

 

아코디언이 세월을 접었다 폈다 한다.

추억 속에서 시간을 당겼다 놓았다 한다.

바람의 소리는 잊혀진 그녀를 데려 오고,

먼길 떠난 동무도 마음 속에 불러 온다.

 

아코디언은 하모니카 소리, 풍금 소리와 함께

공기만큼 추억을 가득 품고 있는 악기이다.

모두 바람을 이용하는 ‘바람의 소리’이기도 하다.

바람을 흔드는 통기타보다도 먼저 만났다.

 

어릴적, 구불구불한 골목길도 아코디언을 닮아서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펴졌다 오므라졌다 한다.

선명하게 오는 것, 그리고 아득히 스러지는 것…

 

악기는 날숨과 들숨을 해야 하는 인간과도 같아서

계속 비우고 채우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

소리도 끝나고 목숨도 마치게 마련이다.

세월을 살다 보면 얼굴만 주름지는 것이 아니라

착하게 살지 못한 죄, 열심히 가지 못한 죄로

마음도 주름투성이다.

그 주름에도 많은 소리가 있을 터인데

왠지 쇳소리만 나는 듯하다.

 

나는 지금 들숨 날숨 없는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