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음악과 굿거리 장단에 대하여

2014-05-09 01;08;58

굿거리 장단은 우리나라 굿 장단의 보편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인 굿거리장단은 서울굿거리에서 대개 굿거리-허튼타령-당악 장단의 일정한 전개 틀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굿거리장단은 3소박 4박자 장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단을 놓는 방법이 서울 굿에서는 매우 독자적으로 나타납니다.‘덩–, 덩–, 쿵-따, 쿵–’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이며, 이 장단의 틀로 된 완만한 곡이 흔히 굿거리장단의 전형입니다. 우리나라의 한강 이남 서부 지역 굿에서 3소박 4박 장단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굿거리장단은 무악에서 일차적으로 서울 굿에 한정된 장단이고, 이차적으로는 서울 지역의 굿거리장단과 한 틀로 묶을 수 있는 장단에까지 확장할 수 있습니다. 삼차적으로는 우리나라 농악에서 이 장단과 흡사한 장단이 더 있으며, 판소리에서도 중중모리 등이 있어서 긴요한 비교거리를 제공합니다. 서울 굿과 경기도 굿에서는 굿거리와 자진굿거리가 대응합니다. 경기도 남부 지역 굿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것 가운데 오니굿거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굿거리, 자진굿거리, 오니굿거리 등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이 굿거리의 원형에 대한 탐색이 가능합니다. 굿거리장단은 우리의 이면에 잠재된 심층적 가락 인식과 관련됩니다. 가령 같은 장단의 틀이 <3·3·3·3>, <3·3·2·2·2>, <2·2·2·3·3>, <2·2·2·2·2·2> 등의 장단으로 변형되는 장단이 곧 굿거리장단입니다. [풍년가] [베틀가] [천안삼거리] 등이 굿거리 장단 민요입니다.

우리나라 음악에는 여러 장단의 형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굿거리장단과 세마치장단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락 찬송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굿거리장단에 문제를 삼습니다. 즉 굿거리장단은 무당이 굿할 때 쓰던 장단인데 이것 가지고 어떻게 신성한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굿’은 무당이 하는 것이지만 ‘굿거리장단’은 무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무당벌레’가 무당과 관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굿거리장단이란 다른 장단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장단의 일종이며 이 장단은 민속무용이나 농악을 비롯한 여러 음악에 고루 쓰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당이나 굿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장단을 단지 이름이 ‘굿거리’라 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신성한 예배 시간에는 사용 불가라고 한다면, 무당이나 굿, 또는 다른 전통 종교가 사용한 것은 기독교 예배에 쓸 수 없다고 한다면, 현행 기독교 예배의 많은 부분에 문제가 생깁니다. 굿거리장단뿐만 아니라 전통음악의 다른 장단과 가락을 쓸 수 없게 되며 그리고 묵도나 기도(祈禱), 축도(祝禱), 축복(祝福), 천당(天堂), 지옥(地獄), 제단(祭壇), 제물(祭物), 신(神), 예배(禮拜) 등의 용어도 사용 불가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개념들은 우리나라의 전통 종교에서 쓰던 것을 기독교가 빌려 와서 같이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더욱 큰일은 ‘하나님’이란 용어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神)의 이름은 본래 히브리어로 ‘엘로힘’인데, 선교 초기에 이것을 한국말로 뭐라고 번역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전래 종교의 신의 명칭인 ‘하나님’을 기독교가 그대로 ‘엘로힘’에 해당하는 한국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19세기 말 기독교가 이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감히 ‘하나님’이란 이름을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하면 토속 종교의 요소가 들어오는 것 같아 기독교가 혼합 주의에 물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란 이름이 어색하지도 않고 거부감도 없습니다.

오래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우리 기독교의 신(神)인 ‘엘로힘’에 대해 ‘하나님’이란 말보다 더 알맞은 우리말은 없다고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전통 종교의 지도자가 기독교와 천주교를 상대로 소송을 건 사건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기독교와 천주교가 하나님(또는 하느님)이라는 신(神)의 명칭을 도용하여 허가 없이 마음대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이란 명칭에 대한 표절 시비다. 그러나 이미 기독교화(化) 된 이 용어에 관한 소송은 ‘이유 없다’고 기각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의 백일잔치나 돌잔치 등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다 무속 신앙에 있으니 전통음악을 무당음악이라 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한복은 어떻게 입고 삼일장의 풍습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가 우리말과 풍습을 받아들였다면 우리 음악과 장단도 받아들이고 예배에 활용하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음악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뿌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